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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나를 만나다' 강연 후기
이경미
어제 강의는 단순한 미술사 강의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따라 선 그린 것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 12세기말 서적의 작은 삽화에 루필루스 수사가 그림을 쓰고 그렸다는 주석을 달아 놓은 것처럼, 인간이 '나'를 외부 형태로 남기고 싶어 했던 원초적 욕망, 그리고 그 흔적을 후대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마음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김정화 강사님은 또 하나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는데 예술가들은 작품 안에 자신이 존재했다 는 흔적을 빼놓지 않고 남겼다는 사실이다. 서명을 남기거나, 혹은 대작 안에 슬며시 자신을 숨겨 넣는 방식으로 말이다. 얀 반 에이크의 "여기 있었다"라는 서명처럼, 화가들은 살아 있다는 증언을 그림 속에 새겼고,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 속에 그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작품을 다시 보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얼굴을 '껍데기' 형태로 작품 속에 넣었다는 설명이었다. 단순한 자화상을 넘어, 고통·허무·정체성의 흔적을 벗겨낸 얼굴 하나로 남긴 그 은유적 방 식은 자화상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철학을 담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렬한 예였다.
현실적으로 자화상이 단지 자기를 바라보는 작업이 아니라, "나 이만큼 그릴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마케팅의 도구, 개인 브랜딩이었다는 관점을 강조했는데 지금의 포트폴리오, 브랜드 브랜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는 미술가들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는지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작업은 치열하고 어려웠으리라.
자화상은 나를 증명하고, 나를 전달하려는 인간의 깊은 욕망이 응축된 기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얼굴 하나를 통해 "나는 여기에 있었고,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그 행위는 결국 우리 모두가 평생 고민하는 질문과 닿아 있다.
김정화 강사님이 함께 제시하셨던 윤동주의 시처럼 평생 동안 나를 미워했다가, 애틋하게 느끼다. 또 그리워하는 복잡한 마음이 그림으로 전달되는 것 같기도 했다.
강의를 듣기 전에 '자화상'이란 주제로 어떤 얘기를 건네실지 궁금했는데, 결국 자화상은 '내 모습'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마주하는 과정'이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임을. 각기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지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이가 들어도 어떻게 계속 성장하고 싶은지, 우리 공부의 모임과 결이 맞닿아 있어 좋았다. 좋은 강의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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